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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신앙에세이

[신앙에세이] 복음은 특권인가?

어제 어떤 블로그를 방문했다가 아주 황당한 경우를 당했다.
희귀하다싶이 한 기독교 블로그를 만나서 반가움에 관련글을 트랙백으로 남기고 댓글을 남겼더니 아주 냉소적인 댓글이 달렸다. 생전 처음 당하는 경우라 어안이 벙벙하여 이유를 알고자 몇번의 댓글을 주고 받으니 댓글을 남긴 분이 한 교회를 섬기고 있는 목사님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고 우리 크리스챤들의 자화상을 보는 것같아 영 마음이 씁쓸하다.

누구던지 오해는 할 수 있다. 더구나 직접 만나서 서로 얼굴을 보고 눈빛으로 나누는 대화가 아니어서 충분히 오해도 받을 수 있고 오해를 할 수도 있다. 그것을 한탄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우리 크리스챤들이 온, 오프라인에서 상대방을 대하는 태도와 양식을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이 글을 대하는 분들에게 좀더 객관적인 판단을 위하여 문제가 되었던 그 분의 블로그 주소를 공개한다.


이번의 연평도 포격이 오워 목사의 전쟁 예언 때문이 아니라는 매우 좋은 내용의 글이었다. '떡과 포도주' 블로그에서도 예전에 오워 목사에 대한 의문을 한번 지적한 적이 있었다.(2010/07/08 - [신앙칼럼] 지금은 회개할 때) 그래서 비슷한 내용의 글이고 공감하는 바가 있어서 트랙백을 남겼다. 아래가 그 당시 나의 댓글이다.


그런데 그 분이 트랙백은 확인하지 않고 나의 또다른 블로그인 이바구 블로그(http://www.ibagu.co.kr/) 를 둘러 보고는 선전을 위한 트랙백을 남기지 말라는 것이다. 손가락으로 산을 가리키는데 산은 보지 않고 엉뚱하게 손가락을 문제 삼는 경우다.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 시간이 없으면 트랙백 내용을 확인 못할 수가 있다. 바쁘면 멀리 있는 산을 바라보기 보다 손가락에 묻은 이물질을 지적할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상대방이 크리스챤이던 아니던 먼저 준비하고 있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선한 양심이다. 우리는 선한 양심을 온유와 두려움으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벧전3:15,16)

복음은 특권이 아니다.
복음은 은혜고 빚진 자의 마음이다.
자격없는 내가 공로없이 받았으니 하나님의 은혜이고 복음을 모르는 자에게 되갚아야 할 빚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무 연고도 없는 헬라인, 야만인, 지혜있는 자, 어리석은 자(=모두)에게 빚진 자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1:14)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의 합당한 자세다.

그 분의 착각대로 내가 내 블로그를 홍보하기 위해 트랙백을 남겼다고 치자.
그래도 복음을 가진 자가 그렇게 댓글을 남기면 안된다.
길 잃은 양이 자기의 블로그를 제발로 찾아 들었다면 복음을 전할 절호의 기회가 되지 않느냐 말이다.
더구나 그는 교회를 대표하는 목사이다.
그가 가진 마음은 은혜가 아니라 특권 의식에 사로 잡힌 오만이다.
내가 볼 때 그의 태도는 '가진 자의 횡포'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내가 어안이 벙벙하고 분한 마음이 들어서 정색을 하고 다시 질문을 했다.


그 분의 댓글이다.(캡튼과 김삼은 동일인이다)


벌써 배는 멀리 떠났는데 복음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소리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복음의 수난이다.
주님께서 피흘려 값주고 사신 귀한 복음이 한 목사의 입에서 30냥도 안되는 헐값으로 마구 마구 팔리는 것을 본다.
그래서 이 블로그의 할일이 많음을 새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