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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신앙일기

[신앙일기] 먹이시는 하나님


저의 신앙 생활 가운데 있어서 자동차 운전은 뗄래야 뗄 수가 없는 대단히 중요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면허증을 발급받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 모든 것이 이상하리 만치 기적에 가까운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자동차 운전 면허증을 발급받은 것은 대학교 3학년때인 1991년도입니다.
그 당시 학교 근처의 운전면허 학원은 대학생에 한하여 할인을 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운전을 배우려는 학생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자동차는 한정되어 있어서 늘 학원은 만원이었습니다.
시간을 쪼개 학원에 가면 30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리면 겨우 10여분 정도 운전석에 앉았다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운전 연습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한달을 연습하고 화원에 있는 면허시험장으로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지금이야 자기가 연습한 학원에서 시험을 보니 차도 타던 차고 환경도 늘 연습하던 곳이어서 합격률이 높지만 그 당시는 그다지 높지를 않았습니다.


제가 시험을 보러 가는 날은 마침 교회에서 부흥회가 있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마산에서 목회하고 계시던 이성렬 목사님 - 지금도 이름을 기억합니다 - 을 모셨는데 부흥회가  대단히 은혜로왔습니다.
치유의 은사가 강한 분이셨는데 제 눈 앞에서 몇년동안 말을 못하던 자매가 말문이 트이는 역사가 일어 났습니다.
즉 성경에서 읽었던 것처럼 벙어리가 말을 하는 광경을 목도한 것입니다.
처음보는 신기한 하나님의 역사에 저도 마음이 대단히 뜨거워졌습니다.
그렇게 은혜롭게 마지막 새벽 부흥회를 마치고 저는 그야말로 영빨(?) 충만한 상태로 면허 시험장으로 갔습니다.

화원 시험장에 도착하니 좁은 학원에서 연습을 하던 우리들은 처음보는 시험장의 광활함에 모두 주눅이 들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 학원생들을 태워갔던 기사 아저씨가 우리 출신의 학원생들을 모아놓고 일일이 코스를 돌며 주의점을 일러 주었습니다.
" 자~알 들으세요. 에~ 이곳은 돌발이 있는 곳입니다....그리고 이곳은 반클러치를 밟고...."
대형 버스로 한곳에 쏟아 놓은 학원생들을 한곳에 모아 놓고 설명을 하니 앞자리는 극성스런 아줌마들이 차지하고 뒤에서는 기사 아저씨의 벙긋거리는 입만 쳐다 볼 뿐이었습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어 운전대에 앉으니 머리 속은 온통 하얗고 뭐를 어떻게 해야 할 지 도무지 떠오르지가 않았습니다.
"출발하라"는 안내 방송을 어렴풋이 듣고 전진 기어를 넣고 출발하는데 번뜩 스치는 생각이 "아~~깜빡이" 부리나케 깜박이를 넣었습니다. 깜박이를 넣고 출발해야 감점이 없는데 저는 3m 앞에 있는 감지선과 동시에 깜빡이를 넣은 것 입니다.
휴~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전에 공포의 등반 코스.
학원에서는 매번 연습할 때마다 뒤로 밀려서 제게는 절망적인 코스였습니다.
그런데 실수인지 은혜인지 1cm 도 밀리지 않고 단번에 올라 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돌발코스.
아까 기사 아저씨의 말을 떠올리며 "여기 어디쯤이라 했는데..." 생각하며 돌발 코스를 찾고 있는데 뭔가 번뜩하는 불빛.
부리나케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고 급정거를 하였습니다.

뭘 어떻게 했는지도 모를 정도로 황망한 마음이 되어 나오는데 안내 방송의 멘트가 시험장에 쩌렁 쩌렁 울려 퍼졌습니다.
" 0 0 0 씨. 100점입니다. 축하합니다"
간신히 턱걸이 합격도 '감사무지로소이다' 인데 100점 합격이라니....

본래 학원에서는 기어 변속 구간에서 기어 변속하다가 시동이 꺼지면 탈락이 된다면서 기어 변속을 아예 연습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어변속을 포기한다면 아무리 다른 곳에서 감점이 없다 해도 최대점수 98점이 나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기어변속을 하지 않았으니 나머지에서 감점이 없다해도 98점이 나와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100점이라니....

원래 저는 7남매중 막내로 자라서 고등학교때까지 형광등한번 갈아보지 않을 정도로 숙맥으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기계 다루는 것에 대하여 일종의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 몸을 싣고 그 기계가 내 조작에 의하여 움직인다는 것과 잘못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감은 내게는 큰 것이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그렇게 내 실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100점 만점을 맞아서 1종 보통 운전 면허에 합격하였습니다.

그래서 며칠후 면허증이 발급되었고 그 다음 주부터 저는 교회 차량을 얼떨결에 운전하게 되었습니다.
도로 연수는 딱 한 번.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목사님께서 경산에서 자인까지 어두컴컴한 길을 연수를 시켜주시더니 열쇠를 넘겨 주셨습니다.
개척교회라 봉사자도 부족하고 시간도 없고 하니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하게 교회 차량봉사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비록 도로에서 신호대기를 하다가 출발할 때 시동을 꺼트리기도 했지만 그 때 시작한 차량 봉사가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교회에서는 대학생들 제자훈련을 5년 가량 지도했으면 그 외에도 오래도록 교육부서에서 잔뼈가 굵었습니다.
그리고 컴퓨터 실력도 상급에 속할 정도로 불편함없이 컴퓨터를 다루고 쓸 줄 알아서 경산중앙교회에서는 초기에 영상실에서 봉사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새가족부에서 몇년간 봉사하기도 했었습니다.
즉 무슨 말인가 하면 저도 엘리트라면 엘리트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놀라우신 은혜로 발급해 주신 운전면허증은 내게는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사의 하나입니다.
어느 교회를 가나 차량봉사는 어김없이 제게 돌아 왔습니다.
여름철에는 더위에 파김치가 되고 겨울철에는 위험에 직접 노출되어 있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저는 기꺼이 차량운전 은사를 활용하려고 합니다.

운전면허증을 받을 초기만 해도 이것이 이렇게 유용하게 쓰일 줄은 몰랐습니다.
각 교회에서 모두가 꺼리는 차량봉사를 하니 어느 교회를 가나 봉사할 것이 남아 있어서 좋았고 또 교회의 부흥에 기여하고 있는 것같은 착각감도 좋았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차량을 타는 성도들의 아낌없는 기도와 행복한 표정을 보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IMF 시절에는 이것을 통하여 온 가족이 경제적인 문제도 해결 받았고 지금도 수입의 상당부분이 운전에 의한 것입니다.
그리고 때때로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좋은 점이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굴렀어도 살아 남았고(2009/05/22 - [신앙일기]하나님의 존재 증명) 늦은 밤 졸음 운전에 시내버스를 뒤에서 들이받고도 양쪽이 별다른 피해없이 무마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번은 아침 등교길에서 등교하는 학생을 횡단보도에서 들이 받아서 학생이 나뒹굴어졌습니다. 그런데 학생이 풀풀 일어나더니 아무렇지 않은 듯이 걸어 가는 것입니다. 급히 차에 태워 응급실로 가서 조사를 하니 세상에 아무데도 이상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학생의 안경이 부서진 값 \65,000을 물어주고 합의를 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데 횡단보도 사고는 10대중과실 사고로서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사고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경제적 어려움을 아시고 무사히 해결해 주신 것이라 믿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운전면허증.
내게는 기쁨이고 하나님의 현현[顯現][각주:1]입니다.
이 운전면허증을 통하여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가기를 소망합니다.

  1. [명사] 명백하게 나타나거나 나타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