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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신앙일기

[신앙일기] 나와 가정을 살린 도형상담교육


2006년 나는 육적으로 심적으로 무척 피폐해 있었다.
가정의 경제는 이미 바닥난지 오래였고 폭풍이 한차례 휩쓸고 간 가정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허울뿐인 내 육신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형국이었다.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었고 하소연하고자 해도 마지막 남은 알량한 자존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태였다.


그러다 우연히 운전을 하면서 극동방송을 듣게 되었다. 그야말로 '우연히' 였다. 평소에는 CBS를 즐겨 듣지만 그 날은 어찌 주파수가 맞춰져 있지 않아서 주파수를 맞추다가 CBS라고 맞춘 곳이 포항 극동방송이었다 - 이곳 경산에서는 그 당시 창원 극동방송은 가끔 전파가 잡혔지만 포항 극동방송은 잡힌 적이 전혀 없었다. 아니 포항에 극동방송이 있는지 조차도 몰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포항 극동방송이 잡힌 것이다.

그런데 그 라디오 방송에서 내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나의 답답한 얘기들을 이름도 모르는 목사님이 나와서 원인과 결과를 차근차근 얘기를 하고 해결책까지 제시하는 것이었다. 기가 막힌 절묘함이었다. 나는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나중에 집에 와서 그 방송 테잎을 구하여 좀더 자세히 듣고자 방송국의 연락처를 찾았다. 그리고 전화를 하여 방송 테잎을 구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날 방송분은 공교롭게도 녹음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보통 방송국들은 녹음을 항상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마도 지방 방송국이니 이런 것이 지켜지지 않았나 보다.

나는 염치 불구하고 매달리다싶이 어떻게 방법이 없겠느냐고 사정을 하였다. 쉬이 물러날 것 같지 않은 사람이라고 판단을 하였음인지 아니면 나의 절박함이 전달되었음인지 그날 방송을 하였던 목사님의 연락처를 알려 주었다.

그래서 나는 즉시 연락을 취했고 그 목사님이 진행하는 도형상담 세미나에 참석을 하기 시작하였다. 매주 한차례 먼거리의 포항을 오가면서 배우는 기질론을 바탕으로 한 도형상담학은 꽉 막힌 내 가슴을 뻥하고 뚫어 놓는 것 같았다. 산소가 가득 담긴 새 세상에서 새로 태어나 새로운 장기로 새호흡을 하는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는 성경말씀 그대로였다.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신비로왔다. 그리고 감사했다.


그 이후 나는 1여년에 걸쳐 도형상담학을 배웠고 나중에는 자격증까지 취득하게 되었다. 이후 내 인생은 새로 시작되었다. 예전에 알던 그는 내가 아니었다. 나는 새로운 시각으로 주위를 볼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을 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를 옭매었던 그 모든 문제들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예전에 내게 닥쳤던 고난이 그만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잘못을 전가하였지만 그것은 문제있는 나와 문제있는 그가 만나 만든 합작품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 이것을 예전에는 왜 몰랐던가. 좀더 일찍 알았다면 이렇게 먼 길을 돌아오진 않았을 것이리라.

나의 생활은 그 때의 결과물로 여전히 힘든 부분이 남아 있지만 나는 한결 자유롭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현실을 본다. 덤으로 나는 이제 나를 넘어 다른 사람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여유와 눈까지 생겼다.

도형상담학은 나와 가정을 살렸다.
아래는 그때 추천받은 책들중의 몇권이다. 책으로 도형상담학을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이 학문으로 모든 개인과 가정이 건강하여지고 나를 넘어 이웃까지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모두가 가지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