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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세상읽기

[세상보기] 거북한 관심


지금 인터넷의 한 구석에선 10만여명의 누리꾼들이 한 연예인을 상대로 9개월째 치열한 진위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제 헤프닝을 넘어 사생결단, 네가 아니면 내가 죽어야 하는 전쟁이 되었습니다.(기사 ☞ 타블로 학력위조 의혹’ 논란 9개월-동아일보)

전쟁의 한 당사자는 '타블로'라는 인기있는 대중 가수입니다.
얼마전에 미모의 영화 배우와 결혼을 하고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어야 할 그가 왜 10만 누리꾼의 표적이 되었는지 알고 보면 매우 허탈한 한가지 때문입니다. 그가 학력을 허위로 발표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가 스탠포드 대학을 진짜 나왔는지 아니면 어쩌다 방송에서 한마디한 것이 빼도 박도 못하게 지금의 상황까지 흘러갔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의 양심의 문제이고 미국에서 지금도 명성을 얻고 있는 한 실존 대학의 명예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가족과도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의 국익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언제부터 남의 학력에 그렇게 지대한 관심이 있었습니까?
우리 사회가 언제부터 남의 살림살이에 이렇게 살값게(?) 관심을 표명했습니까?
우리 나라가 언제부터 이렇게 10만 회원의 카페를 새로 만들어 상대방에게 양심을 촉구하였습니까?

이것은 수재민을 돕기 위한 의연금 모금 카페가 아닙니다.
고통에 시달리는 지구촌의 빈민을 돕기 위한 의로운 모임도 아닙니다.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한, 한 사람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기 위한 무자비한 폭력과 다름 없습니다.

그가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했으면 어떻습니까
그가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으면 어떻습니까
그것이 무어 그리 중요합니까


그림 출처 : 동아닷컴



따져보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는 잘 나가는 그가 싫은 겁니다.
내가 다니지 않은 미국의 명문대를 다닌 것이 부럽고, 지금 잘 나가는 가수인 것이 부럽고, 최근에 미모의 영화배우를 만나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이 부러운 것입니다. 이제 그 부러움은 질시로 변했고 이제는 그가 무엇을 해도 용납이 안되고 이유없이 미운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이번에 운좋게도(?) 학력위조의혹이 터져 버렸으니.....

우리나라의 이런 떼몰이 시위는 처음이 아닙니다.
연예인들의 각종 학력 위조 시비, 성형 의혹 시비 뒤에는 항상 이런 부러움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런 부러움의 특징중 하나는 한번 그들의 눈밖에 나면 그가 파멸하여 재기 불능이 되거나 죽는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그가 무엇을 해도 용서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박재범을 지켜주지 않은 박진영 기획사 대표는 또다른 예입니다.
이제는 그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토를 당합니다.
심지어 자사 소속 가수 원드걸스가 동양인 최초로 빌보트 챠트 7위에 올라도 깎아 내리기 일쑤입니다.

최근의 비(정지훈), MC몽, 김종국 등이 또다른 경우입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던 딴지를 걸고 나옵니다.
오죽하면 월드스타로 불리던 가수가 키를 해명하기 위해 인증샷을 찍어 공개하기도 했겠습니까.

비의 키 해명 인증샷



우리 나라에는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듯이 나보다 남이 앞서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못된 근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못된 근성이 인터넷의 익명성을 빌어 집단으로 몰려 다니며 시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해 아래 새것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며 몰려 다니는 사람들도 그의 과거나 현재를 뒤집어 보면 그들도 영락없는 흠결 투성이의 인간에 불과함을 알아야 합니다. 서로 부족한 인간임을 고백하고 서로 격려하며 보듬어 주는 사회가 참으로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