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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세상읽기

[세상보기] 2010년도의 거북하고 불편한 한국영화들


2010년도의 한국 영화들은 참 관객들을 거북하고 불편하게 만든다.
거북하다 함은 영화의 잔혹함 때문이고, 불편하다 함은 관객의 기대(?)를 저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관객들은 지금 심히 거북하고 불편하다.
멀쩡하던 출입문 손잡이가 고장이 난다면 우리는 문을 열때마다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더 심하여 쪽문이나 뒷문을 이용해야 한다면 평소 못볼 것을 볼 수도 있기에 거북하게 된다. 2010년도의 한국 영화가 꼭 그런 꼴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기분 전환이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극장을 찾는다.
물론 영화 마니아들은 영화 자체를 즐기기 위해 푼돈을 들여 영화를 보긴 하지만 나이가 조금이라도 들고 어려운 시절을 헤쳐나온 사람들은 거금 8천원(3D영화는 1만 3천원)으로 배부르지 않은 일에 돈을 쓰는 것에 알 수 없는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금을 들여 영화관을 찾았는데 도리어 스트레스를 받고 오거나 심적 거북함과 불편함을 느낀다면 뭔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 아닐까


몇일 전에 영화 <악마를 보았다>를 보았다.
문제(?)가 있는 영화여서 나는 처음부터 피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 심함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어 호랑이를 잡는 심정으로 영화 티켓을 과감히 끊었다.
그런데 아뿔싸, 이 정도 일 줄이야.
영화를 보기 시작한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급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는 여린 내 마음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영화가 시작하자 마자 미친듯이 화면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칼로, 도끼로 내 가슴을 무차별적으로 후벼 파더니 그들의 살륙의 현장 이곳 저곳으로 나를 끌고 다녔다.
꼼짝없이 나는 2시간 반동안 영화관에 갇혀서 두 대형 영화 배우의 광기의 대결을 무방비로 보아 주어야 했다.

그야말로 두 배우는 악마였다.
누가 더 진정 악마인지를 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영화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그 더러운 찌꺼기가 내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아 영 찜찜하다.
코 끝에서는 아직까지 피 비린내가 나는 것 같다.


지금 영화관에는 <악마를 보았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몇달에 걸쳐 한국영화는 무차별적으로 관객들을 피의 살륙 현장으로 초대하고 있다.
<파괴된 사나이>가 그렇고 <아저씨>,<악마를 보았다>,<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그렇다.
마치 한반도가 발악하는 악마들의 대공습 현장이 되는 것 같다.

이런 류의 복수극은 홍콩 영화나 헐리우드 영화에서는 오래되고도 진부한 레파토리다.
내가 당한 아픔을 몇배, 몇십배, 몇백배로 그 가족에게 또는 그 집단에 퍼붓는 것 말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 영화에 펼쳐지는 복수극은 그런 류에 비길 바가 아니다.
집단이 아닌 개인을 상대로 엄청나고도 무자비하게 그리고 집요한 폭력을 가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말한다.
'내 폭력은 정당하다'고.
마치 빌라도가 예수를 넘겨 주고 손을 씻는 행위와 비슷해 보인다.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27:24)

일견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다.
손을 씻는다고 그 죄가 없어지지 아니하며 상대가 폭력을 행했다고 내가 행한 폭력이 정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을 능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12:19)


우리 피조물들에게는 하나님이 만드신 생명체를 해할 권리가 있지 않다.
우리는 오로지 그들을 긍휼히 여기며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겨야 하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장로들(=권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질서있게 다스리는 것이며 이는 곧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세상의 문화는 틈만 있으면 밖으로 일탈하려고 한다.
우리는 힘써 우리의 몸과 영혼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문앞에 엎드린 죄를 다스려야 한다.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4:7)

그러나 다스리기가 쉽지 않고 죄가 너무 많은 세상이니 그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