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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신앙칼럼

[신앙칼럼] 차라리 울어 버려라


제가 대학교를 다닐 때 아끼던 여자 후배가 한명 있었습니다. 그녀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언니로부터 입니다. 언니가 먼저 대학을 입학하면서 예수님을 만났고 언니는 교회의 청년대학부에 충실한 일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동생이 같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그녀도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녀에게는 만났다는 표현보다는 젖어 들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입니다.

처음 그녀를 본 것은 대학입시를 앞둔 어느 날이었습니다. 대학입시 시험을 치루기 위해 하루 전에 시골에서 올라 왔지만 방학이라 거처가 마땅찮았던 그녀는 언니와 함께 교회 사택에 머물렀습니다. 그날도 어김없이 진행된 교회의 입시생을 위한 특별새벽기도 시간에 자다가 할수없이 끌려 나온 그녀는 새벽 단잠을 자지 못한 것이 못내 못마땅한 듯 뾰루퉁한 입술과 불만이 가득한 눈길로 멀찍이 사람들을 응시하였습니다. 짧은 설교가 끝나고 개인기도가 시작될 때 전등을 끄기 위해 고개를 드니 다른 수험생들은 모두가 교회 사택을 이용함에 대한 예의 때문인지 아니면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함인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유독 그녀는 고개를 빳빳이 들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물들지 않겠다는 듯 짐짓 결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그녀는 무사히 시험에 합격하였고 학교 생활과 함께 아주 드물게 그녀의 교회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미술학도답게 매우 엉뚱하였고 당돌하였습니다. 언니가 청년대학부의 임원임에도 불구하고 이 당돌한 신출내기는 가끔가다 심심하면 한번 교회를 와주는 정도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녀의 엉뚱함과 당돌함은 형제들과 목사님의 눈에 포착되었고 그녀에 대한 진한 관심과 사랑은 이렇게 짝사랑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윽고 그녀의 대학생활에 대한 호기심은 시들어 갔고 그에 반비례하여 형제들과 목사님의 관심과 사랑은 지대하였습니다. 그녀의 외출이 점점 줄어 들더니 이제 교회에서 그녀의 얼굴은 제법 익숙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길고 긴 짝사랑에 그녀가 서서히 반응을 보이더니 그녀는 빠르게 교회의 일원이 되어 갔습니다.

2학년 여름방학 수련회가 끝나고 난뒤 그녀는 고향집에 내려가 어머니와 복음을 앞에 두고 마주 않았습니다. 전에 없이 진지한 딸의 모습이었지만 유교적 전통이 강한 안동 권씨 가문의 어머니로 한평생을 보낸 어머니는 완고하였습니다. 끝이 없는 평행선 같은 대화에 마침내 그녀는 울음을 터트렸고 대화는 그렇게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며 유야무야 끝이 났습니다.

나중에 교회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이야~ 0 0 많이 컸네. 그래 어떻던데?"
"나도 모르겠어요. 그냥 엄마가 너무나 답답해서 나도 모르게 울어 버렸어요"

그녀는 교회 생활에서 서서히 하나님을 알아 갔고 수련회를 통하여 내가 가진 복음이 얼마나 귀중하며 얼마나 절박한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생각났고 급기야 고향에 내려가자 마자 어머니에게 복음을 제시했고 그 간절함은 그녀의 통곡으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성경에도 이런 눈물이 있습니다. 한 여인이 예수님의 뒤로 가서 말없이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십니다.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눅7:37-38)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마26:13)

우리가 가식적인 눈물이 아니라 진정 한 영혼을 바라보고 흘리는 눈물은 주님이 기억하시고 그 눈물의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에는 긴 말이 필요없습니다. 영혼을 담은 한 마디면 충분합니다. 그리고 부족하다고 느끼신다면 진심을 담아서 그냥 차라리 한번 울어 버리세요.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