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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신앙칼럼

[신앙칼럼] 잘못된 열심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제나 열심을 내라고 말씀하신다. 열심을 내지 않고 미지근하면 토하여 버린다고 까지 말씀하신다.(계3:16) 그래서 피조물인 우리들은 각자 무엇인가 하나에는 열심을 내고 있다. 그런데 그 열심의 대상이 잘못되어 우리는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인류에게 패악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몇일전에 한 부부가 똑같이 컴퓨터 게임에 열심을 내다가 자녀를 굶겨 죽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컴퓨터 상으로 사이버 아기에게는 열심을 냈지만 정작 보살펴야 할 자기의 자녀는 돌보지 않고 방치하여 숨진 것이다. 그들이 컴퓨터 게임에 열심을 내지 않았다면 소중한 생명이 굶어죽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물은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만 열심을 한다. 백수의 왕 사자가 하루꺼리도 되지 않는 토끼를 잡기 위해 전속력 질주를 하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인간만이 유일하게 생존이 아닌 그 무엇을 위해 오늘도 열심을 내고 있다. 그들의 열심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컴퓨터 게임에 열심인 사람이 식음을 전폐하고 게임에 몰두하다가 굶어죽은 경우도 벌써 국내에서만 몇번이나 발생하였다. 히말라야 등반을 하는 사람은 밧줄에 몸을 의지하고 그 얼음벽에 매달려 잠을 자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우리는 선조들의 열심 위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열심이 없었다면 인류의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열심도 있었지만 우리를 고통으로 내몬 열심도 참으로 많았다. 인류 역사에 크고 작게 일어난 각종 전쟁과 테러들, 미움, 다툼, 시기도 어떻게 보면 인간의 열심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히틀러의 광기어린 열심은 600만의 생명을 앗아갔다. 히틀러 당시 독일은 기독교 국가였다. 나치스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나선 사람이 히틀러였다. 히틀러는 비엔나에서 유학할 때 기숙사 방에서 본 중세 십자군의 마크를 활용해서 나치의 깃발을 만들고 인종청소라는 명목으로 유태인 600만을 학살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인가에 열심을 내고 있다. 내가 열심을 내고 있는 부분을 생각해 보라. 그것이 열매는 없이 시간만 낭비하는 열심은 아닌지, 인류에 패악을 끼치는 열심은 아닌지,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를 흐트리는 열심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