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리고 나/신앙칼럼

[신앙칼럼] 사랑은 포퓰리즘이 아니다

지금은 일본 열풍중?


때 아닌 일본 열풍이다.
일반인들이 하루를 마감하는 9시 뉴스시간에는 전 시간을 할애하여 일본의 지진 피해 소식을 전하고 있다.
검은 해일이 집과 사람들을 휩쓸고 지나가는 장면, 연기를 피우며 방사능 물질을 내뿜고 있는 원전 장면은 안타까움을 넘어 같이 아파하는 우리 지구촌 가족들의 갸륵한 마음이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매일 아침 읽는 국민일보에는 교계 뉴스보다는 이웃 나라 일본의 지진 피해 소식이 더 많다.
한 켠에 조그맣게 난 교계 뉴스에도 어김없이 교계 지도자들의 한 마디나 기도모임은 온통 일본을 돕자는 소식들 뿐이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이 정도면 되지 않았을까하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않는 것이 맞다.(고전13:4) 그리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도 맞다.(고전13:7) 그리고 그들이 정신대 할머니의 일본 대사관 앞에서의 매주 수요 집회를 묵살해도 그들의 현재 아픔을 위로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푸는 것이 맞다. 그리고 일본 위정자들이 매년 새해 아침에 일본 전범들이 묻혀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여 군국주의 정신을 새롭게 일깨우는 것을 보면서도 그들의 무지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본다.

그러나 최근의 사회 분위기에 덩달아 행하는 우리 교회의 일본에 대한 러브콜이 정말 번지수를 제대로 찾고 있는지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랑은 포퓰리즘이 되어서는 안된다


사랑은 포퓰리즘[Populism][각주:1]이 되어서는 안된다. 더우기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우리 크리스챤들은 우리가 행하고 있는 행동과 말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것이 되면 절대 안된다.

이번 일이 한국의 한 원로 목사님의 말처럼 '우상숭배 등으로 인해 생긴 하나님의 벌'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만의 하나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일본에 대한 러브콜을 즉시 거두어야 한다. 어호수아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나서 공포한 말씀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수6:26)

나는 우리 기독교가 일본 돕기에 나서는 것에 찬성한다.
그러나 지금 지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작금의 일본에 대한 짝사랑은 도에 지나친 것이 아닌가 나는 우려한다.

우리 교회에서는 전번 주에 일본을 돕기 위한 특별헌금봉투가 주보에 끼워져 개인에게 돌려 졌다.
일본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으면 목사든지 아니면 장로든지 개인적으로 도우면 된다. 이렇게 개인 봉투를 나눠 주며 일반 성도들에게 부담을 줄 필요가 있느냐 말이다. 나는 교회가 제대로 된 절차를 밟는다면 당회가 결의하고 교회의 구제비에서 교회의 이름으로 기금을 내는 것이 더 옳다고 본다. 무엇때문에 촉새처럼 교회가 나서서 개인에게 봉투까지 돌리며 헌금을 강요하는가 말이다.





구제도 형평성있게 하라


구제도 형평성이 있어야 한다.
얼마전 국내의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때는 피해 유가족들을 돕기 위한 개인 특별헌금봉투를 돌리지 않더니 이번 일본 돕기에는 왜 헌금봉투를 제작하여 돌리느냐 말이다. 이는 국민들에게 교회가 돌 맞을 일이다.

나는 헌금봉투를 받아 들고 심히 불쾌하고 우려스러웠다. 일제시대때의 신사참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한국 기독교의 신사참배는 무지한 평신도들이 앞장선 것이 아니다.
교단을 좌지우지하는 일부 기독교계의 어른들이 신사참배는 괜찮다고 해서 잘 모르는 성도들이 일본의 우상에 절을 한 것이다. 괜찮다고 한 기독교계의 어른들이 개인적으로 참배했다면 한국 기독교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다. 괜찮다고 잘못된 해석을 내리고 교회를 동원하였기 때문에 한국 기독교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의 역사를 남긴 것이다.

맺음 말


우리 기독교계의 일본 돕기에는 기독교의 단일 창구를 통하여 도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촉새처럼 나서서 오버하는 지교회를 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구제의 대상은 일본이 아니라 정신 못 차리고 오버하고 있는 한국의 교회들이다.
  1.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에서 본래의 목적을 위해서라기보다 대중의 인기를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