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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신앙칼럼

[신앙칼럼] 나가수 열풍을 바라보며


일요일 저녁에 방송되는 MBC-TV의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이 연일 화제입니다.
프로그램이 방송되어도 화제이고 여러가지 문제로 방송이 중단되어도 화제입니다.
방송에서 불려졌던 노래는 그 다음날부터 국내의 음원챠트를 모조리 싹쓸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나가수'의 열풍을 바라보면서 사실 배가 조금 아픕니다.
왜냐하면 원래 가사에 가락을 붙여 부르는 노래라는 방식은 피조물인 우리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찬양하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지 지금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상대로 사랑의 세레나데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주신 노래들을 우리 크리스챤들이 잘 사용하면 '나가수'의 열풍이 그리 배 아파할 사안이 아니겠지만 우리들의 음악은 지리멸렬하는데 세상 노래가 온 인터넷과 방송을 도배하다시피하고 있고 국민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지고 있으니 괜히 배가 아픈 것입니다.

교회의 음악도 우리 크리스챤들의 중심에 섰던 아스라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70-80년대 초반 캠퍼스를 중심으로 시작된 복음성가라는 교회 음악은 젊은이들의 가슴을 열정으로 불태우더니 급기야 교회에까지 진출하여 순식간에 온 교회를 찬양의 열기로 가득 채웠습니다. 교회마다 찬양단이 조직되었고 엄숙하기만 하던 교회에는 박수소리와 각종 악기 소리로 연일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설마 설마하던 연로하신 장로님들은 급기야 드럼이 강대상 옆에 놓이는 것을 허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30여년이 지난 오늘 온교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전문 찬양사역자들은 이제 생활고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불러주는 곳이 없다고 하소연합니다. 이 같은 현상은 이미 예전에 예견되었던 일입니다.

찬양의 열기가 한풀 꺽이던 90년대 초반 깨어있던 많은 기독교의 어른들께서 CCM의 문제점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노래에 심취하였을 뿐 이 얘기를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일반 예배에서조차 공인된 찬송가보다 복음성가를 더 많이 불렀고 우려하는 어른들의 염려는 다윗의 찬양 모습(삼하6:14)을 들며 일축하였습니다. 그리고 거칠 것 없이 2000년대로 치고 올라갔습니다.


지금 CCM은 동력을 잃고 표류하고 있습니다.
7-80년대 복음성가는 그래도 환영을 받을 수 있는 동력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 서로를 격려하는데 복음성가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분위기에 심취했을 뿐 자기를 돌아볼 줄 몰랐습니다. 활성화되고 환영받을 때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잘 나갈 때 현재의 위치를 점검하고 영성있는 찬양사역자들을 양육해야 했습니다. 노래와 찬양은 다릅니다. 노래는 목소리만 있다면 언제든지 미래가 가능하지만 찬양은 영성의 뒷받침 없이 미래를 계획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지금 교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찬양예배는 보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서 나누는 예배로의 변신도 하나님께 죄송스런 일이었는데 보는 예배로의 전환은 더 이상 하나님을 설득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보는 예배는 세상과 경쟁해야 합니다. 이미 세상 미디어에 익숙한 교회의 구성원들은 왠만한 볼거리에는 꿈적도 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뮤지션들이 더 쇼킹하고 더 새롭고 더 자극적이지 않으면 환영받지 못하듯이 찬양 인도자들도 자랑이라도 하듯이 매주 신곡을 선보이고 있지만 그것은 도리어 자충수가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언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합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찬양인도자들이 거룩을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원합니다. 매주 선보이는 신곡 나부랭이에 우리는 관심이 없습니다. 의무적인 예배 참석도 하루 이틀이지 언제까지 우리가 그 신곡 퍼레이드를 봐 주어야 합니까. 우리가 느끼는 허기는 신곡에 대한 그런 허기가 아니라 하나님 찬양에 대한 배고픔입니다.  찬양인도자님들 제발 우리 영성의 배고픔을 채워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