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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신앙칼럼

[신앙칼럼] 내적치유에 대한 오해


교회 생활을 열심히 한 사람일수록 외부 교육에 대한 지나친 편견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는 교회가 바라는 착한 성도요 험한 세상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바람직한 자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너무 지나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이런 인식에는 '세상은 위험한 곳이요, 우리가 변화를 시켜야만 할 대상이다'는 오랜 교회적 교훈이 그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다. 세상은 정말 위험한 곳입니다. 그들의 문화는 우리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이런 인식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만날 수 있는 접점을 많이 놓치고 있으며 능력적인 면에서 그들보다 많이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대표적인 오해가 내적치유에 대한 오해입니다.
몇년전에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께서 하셨다는 아래의 말씀에 저는 탄식을 하고 말았습니다.

"내적 치유가 무슨 필요가 있어. 기도하면 되지.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고쳐주시는데..."

이런 무식은 일반 성도라면 서너명의 가족만 망치면 그만이지만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가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머지않아 교회를 망칠 일입니다.
위의 말은 아래의 말과 같습니다.
"병원이 무슨 필요가 있어. 하나님께 기도하면 되지. 하나님은 치료의 하나님인데..."

맞습니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병원도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약국도 있어야 합니다.
감기약을 먹는다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듯이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기법인 내적치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우리는 버려야 합니다.


제가 금요일 오전에 가는 미술치료 강좌에는 매주 수강생 20여명이 귀를 쫑긋 세우고 강의를 듣고 있습니다.
그 강좌는 교회에서 하는 강좌가 아닙니다. 사회의 복지단체에서 운영하는 강좌입니다.
올해 처음 생긴 강좌에 정원 20명이 다 찼고 대기자가 26명이 있는 인기 강좌입니다.
저는 상담기법을 배우기 위해 참석하지만 그들의 참가 이유는 거의 대동소이합니다.
내 자신을 알고 싶고 내 자녀를 올바르게 키우고 싶다는 것입니다.
남편과의 알 수 없는 마찰을 줄이고 가정의 평화를 이루고 싶다는 것입니다.
속내는 그들의 마음이 허한데 기댈 데가 없으니 어디 한군데 의지하고 싶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맨날 교회에 모여 아브라함만 찾습니다.
그 많은 수강생 중에 대구경북 최고의 교인수를 자랑하는 우리 교회 집사님들은 한분도 안 보이고 동네 아줌마들만 모여서 그 허한 가슴을 미술치료로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입니다.
목사가 내적치유가 필요없다고 하니 그 설교를 듣고 있는 착한 성도들은 당연히 무식한 설교에 은혜받고 세상과 담 쌓고 우리끼리 "할렐루야!", "아멘!" 하는 것입니다. 옆집 아줌마가 찌지고 뽁고, 죽든 말든 우리끼리 철야 예배 와서 은혜받고 거품물고 "할렐루야!" 하는 것입니다.

금요 철야 예배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미술치료보다 못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서로 서로 조금만 돕고 이해하고 살면 될 것을 그것을 몽땅 성령님께 맡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나님께 전부 전가시키는 무책임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감기가 걸리면 기도하고 감기약도 필요하면 먹어야 하듯이 우리가 기도하되 우리의 역할도 충분히 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의 완성이고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칭찬받는 종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