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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신앙칼럼

[신앙칼럼] 존엄사에 대하여 할 말은 하자


작년 말부터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며 많은 사람을 두편으로 나누어 격렬한 설전을 또는 찬반 시위를 불러 일으킨 한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나라에 존엄사 논쟁을 불러 일으킨 연세 세브란스 병원의 김모 할머니(77) 사건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로 잠시 언론의 중심에서 비껴갔지만 가장 최근의 신문보도(연합신문-2009.9.4)에 의하면 아직 생존해 계시다고 합니다. 지난 6월 21일 연명치료를 중단한 이후로 자발적인 호흡으로 2달이 넘게 그 긴 생명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김모 할머니의 사건 발단


사건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김모 할머니는 슬하에 1남 3여를 두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모두 서로간에 우애가 깊고 신앙심이 깊으며 사위들은 사업가, 교수등으로 모두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경제적인 어려움은 없는 가정입니다.

김모 할머니는 2008년 2월 18일, 연세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여 폐암 발병 여부를 검사하기 위해 조직검사를 받던 중 뇌손상을 입어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인 가족들은 평소 할머니의 신앙과 말씀("구질구질하게 죽고 싶지 않다")을 생각해 내고 여러 번의 가족 회의를 통하여 법원에 존엄사 인정 소송을 신청하기에 이릅니다. 그 결과 2009년 5월 21일 법원은 1심 판결에서 가족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은 법원 판결에 따라 6월 21일 김모 할머니의 산소 호흡기를 제거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국내 첫 존엄사 인정이라는 사회적 관심이 증대하더니 엉뚱하게 각종 사회단체와 종교단체가 너도나도 성명을 발표하며 끼어들기에 이릅니다. 이는 그간 30여년간 이뤄졌던 논쟁의 연장선이겠지만 영원한 생명을 아는 가족과 크리스챤들은 한마디 거들기에도 난감한 국민적인 이슈가 되었습니다.

 

 기독교계의 입장 발표에 대한 아쉬움


저는 그 당시 기독교계의 여러 어른들께서 목회자의 이름으로 한마디 하지 못한 처지에 대하여 이해는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올바른 방법은 아니었지 않았나하고 생각해 봅니다.
만약에 기독교계의 한 어른께서 존엄사 인정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였다면 아마 타종교나 모든 시민 단체의 엄청난 협공을 받았겠지요. 아마 아프칸 인질 사태 이후 기독교계가 최대의 욕을 먹는 사건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침묵이 강도만난 사람을 외면한 제사장레위인(눅10:25-37)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이번 기회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는 아니었을까요

이와 비슷한 사건이 제 주위에도 있었습니다.
모권사님의 친정 어머니께서 저녁을 일찍 잡수시고 평소와는 다르게 자식들에게 이상한 말씀을 하시고 잠자리에 드셨다고 합니다.
"내가 먼저 갈테니까 너희들 신앙생활 잘하고 나중에 만나자"

자녀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크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모두들 잠자리에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새벽녁에 아무래도 이상하여 확인을 해 보니 할머니께서 기척이 없는 것입니다. 신앙이 있는 자녀들은 어제 저녁의 말씀을 떠 올리고 그 분의 천국행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다른 가족들이 할머니를 들쳐 업고 급히 병원을 찾아 응급실에 입원을 시켜 최신 의학 기술로 심장을 띄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몇개월을 응급실에서 식물인간으로 있다가 임종하셨습니다.


 제2, 제3의 안락사 문제 발생 가능성은 많다


요새는 의학 기술이 발달되어 신체의 모든 기능은 정지하여도 심장의 박동은 멈추지 않게 할 수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응급실 병원비를 감당못하는 가난한 서민들은 담당 의사에게 연명 치료를 중단해 줄 것을 요구하면 병원에서도 '알아서 하라'는 애매한 말로 암묵적인 승낙을 하고 자리를 피해주면 가족중 하나가 병실에서 아무도 없을 때 슬며시 호흡기줄을 빼 놓는다고 합니다. 이런 사실은 응급실 주변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비밀 아닌 비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김모 할머니 사건은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가족들의 종교적 신념에 의하여 존엄사를 신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제 3자가 성명을 발표하고 시위를 하고 난리법석을 떤 것입니다.
어차피 천국에 가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할머니를 현세에 식물인간으로 몇달간 잡아 둔다고 그 분에게나 가족들에게 하등의 도움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존엄사를 천국을 전파하는 계기로 삼자

이와같은 일은 바로 일반인들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차이 때문입니다.
일반인들은 인생의 마지막이니 비록 식물인간 상태이어도 한 시간이라도 더 세상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그 분에 대한 최선의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크리스챤은 천국에 가서 편히 쉴 사람을 현세에 식물인간으로 붙잡아 두는 것은 도리어 그 분에게나 가족들에게 경제적으로 또는 육체적으로 고통을 가중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좀더 하나님의 말씀을 눈치보지 않고 선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차피 그들은 무슨 말을 해도 욕을 해댈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고 우리는 중요한 기회를 놓쳤습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이 생명을 경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는 것이라는 것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