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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신앙칼럼

[신앙칼럼] 목사는 무엇인가


"목사는 무엇인가?"
새삼스럽게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설교하는 사람인가
성도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주고 불편을 해소해 주는 서비스맨(하나님의 종?)인가
교회를 대리경영하는 사람인가
높으신 하나님과 낮디 낮은 인간들을 연결해 주는 다리인가

셩경에서 말하는 목사는 위 대답 어디에도 없다.
왜냐하면 예수가 목사이고 모세가 목사이고 베드로가 목사이고 바울이 목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위 항목의 어느 한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대하고 있다.

그래서 자기가 생각하는 역할에 조금만 벗어나도 목사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목사는 설교만 하면 되지 지가 뭘 안다고..."
"목사 지가 건축에 대하여 뭘 알아. 전문가가 알지...."
"살아도 내가 더 살았지.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먹을 것이 생긴다는데....."

내가 교회 생활 40여년을 하면서 수도 없이 들은 말이다.
그래, 위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목사는 신학교가서 설교법을 배웠으니 설교에 진력하면 된다.
교회 건축은 필요하면 성도들 중에 전문가들을 추려서 건축위원회를 만들어 실행하면 된다.
장로들은 인생의 연륜이 깊으니 자문단처럼 목사가 교회를 운영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머리 조아리고 조언을 구하면 된다.

어떤가
그 교회 잘 굴러가지 않겠는가
만약 그렇게만 한다면 교회 분쟁의 대부분은 해소되고 축복받은 교인들로부터 수금도 잘 걷히고 교회는 땅사고 삐가번쩍한 새예배당 짓고 일취월장 성장하게 될 것이다. 만약에 새로운 신도 수급에 차질이 생겨 재정이 압박받는다면 무능한 목사 갈아치우면 그만이다.

그런데 말이다.
하나님은 예수를, 모세를, 베드로를, 바울을 그렇게 사용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예수를 30년간 목수일을 시키시더니 물을 포주주를 만들게 하셨다.
아니 예수에게 30년간 목수일을 시키셨다면 그의 전공을 살려 대들보 하나로 하루아침에 성전을 만들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더니 죽어서 몇일이 지나 썩은 냄새가 나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
아니 예수가 무슨 장의사를 하셨나 죽은 사람을 왜 살려....
예를 든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라서 그런가 그러면 모세를 예로 들어 보자.

하나님은 모세를 40년간 양을 먹이는 목자 생활을 하게 하시더니 어느날 갑자기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탈출시키라 하신다. 이 무슨 얼토당토 않은 말인가
만약에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할 계획이셨다면 애초에 40년간 유격훈련을 하게 하시던지 아니면 적어도 지도를 펴놓고 독도법이라던가 70만을 일사천리로 인도할 리더십을 배우게 했어야 했다.
그런데 모세는 40년간 고작 한게 하늘 쳐다보며 "메에~~"거리며 말도 통하지 않는 양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어떤가
평생을 고기 잡던 베드로를 불러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다.
전도와 고기 잡는 것과는 연관성이 전혀 없다.
심지어 베드로는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셨다.(행 3:1-10)
앉은뱅이는 나면서부터 앉아있던 사람이라 걷는 방법조차 모르던 사람이었다.
베드로가 무슨 접골원 자격증이나 경험이 있어서 한 것이 아니단 말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이 필요하시면 그가 어부이던, 세금원이던, 뒷골목 깡패이던 쓰시겠다는 것이다.
뭐가 불만인가
하나님이 필요해서 목사로 쓰셨는데 목사는 설교만 해야 한다고 주저 않히느냐 말이다.
왜 건축에 대하여 말하면 안된다는 것인가 말이다.

성경에도 목사(지도자)의 역할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있었다.
고라이다.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위에 스스로 높이느냐"(민16:3)
고라가 모세에게 한 말이다.
이것은 쉽게 말해서 "우리(회중)도 다 각각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있고 여호와를 섬기는데 니가 뭔데 스스로 나서느냐"는 것이다.

그에 동조하여 얼빠진 목사는 알아서 기는 경우도 있다.
"나는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섬김의 리더십을 실행하겠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갈등이 될만한 것은 얘기조차 꺼내지 않고 앞치마를 두르고 성도들의 발을 씻기려고 설친다.

물론 예수님의 사역에 제자들의 발을 씻긴 섬김의 모습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부분이지 전부가 아니다. 예수님이 지금의 얼빠진 목사들처럼 매일 제자들의 발을 씻긴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채칙을 만들어 성전에서 비둘기 파는 사람들을 친 것(마21:12)은 폭력의 리더십이란 말인가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마23:27)"라고 한 것은 폭언의 리더십이란 말인가

목사는 목사다워야 하고 장로는 장로다워야 하고 집사는 집사다워야 한다.
심지어 노가다판에도 십장은 십장다워야 한다.
십장이 맨날 삽들고 시다바리들과 똑같이 땅을 판다면 십장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노가다판을 사장의 지시를 받아 시다바리를 움직여 기일까지 완공하는 것이 십장의 역할이다.
그래서 시다바리보다 더 비싼 돈을 주고 십장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십장이 시다바리 눈치를 보다가 기일까지 작업을 마치지 못한다면 그는 당장 모가지다.
십장은 삽질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십장의 일이 있다.
그래서 때때로 십장은 작업 지시를 해놓고 그늘에 앉아 쉬기도 한다.
왜?
십장이니까
뙤약볕에 비지땀을 흘린 시다바리보다 더 월급을 많이 받아간다.
왜?
십장이니까

섬김의 리더십.
듣기는 좋지만 오늘날 교회가 힘을 잃어가고 사회적으로 욕을 먹게 한 일등 공신의 다름 아니다.

우리는 올바른 리더십을 갖춘 목사를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리더십에 복종해야 한다.
만약에 불행하게도 얼빠진 목사를 만났다면 우리는 새로운 지도자를 찾아 가던가 아니면 그의 빠진 얼이 돌아 오도록, 빠진 얼에 성령의 능력을 채워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목사들의 영적 권위를 인정해 주고 그가 성령의 능력에 의지한 지도력을 펴도록 기도하고 협력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앞당기고 세상속에서 교회가 굳건히 서 가는 것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