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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신앙칼럼

[신앙칼럼] 여호와께서 언어를 혼잡케 하사


몇일전에 중국인과 하루를 보낼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이 다르다는 것 이상으로 그와 나 사이에는 더 큰 장애가 존재함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창세기 11장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하늘에 닿고자 탑 쌓기를 시작하자
그것을 막기 위하여 직접 하강하시어 언어를 혼잡케 하여 탑 건설을 막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창11:6-7)


저는 이것을 읽으면서 언어가 다르면 서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공동 작업이 어려울 수도 있겠구나하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서로 언어가 다른 중국인과 직접 하루를 보내고 보니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언어 이상의 그 무엇이 있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첫째, 그들과는 언어 뿐만이 아니라 몸짓까지 달랐습니다.
우리는 3개를 뜻할 때 흔히 엄지와 검지, 장지를 치켜 세웁니다.
하지만 중국인은 우리와 완전히 반대였습니다.
그들은 엄지와 검지를 뺀 나머지 세 손가락을 치켜 듭니다.

둘째, 식성이 달랐습니다.
우리의 식문화는 국물문화입니다.
야채든지 고기든지 삶거나 끓여서 국물을 우러나게 해서 먹는 문화입니다.

하지만 중국인은 기름에 튀겨서 먹는 문화였습니다.
미국인은 아마 구워서 먹는 문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세째, 혀의 근육 발달이 달랐습니다.
중국인들은 습관적으로 말을 할 때 비음과 혀를 굴리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언어의 습관에 의하여 혀의 근육이 한국 사람과 다르게 발달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내가 아무리 정상적으로 "마을"이라고 발음을 해도
그들은 이상하게도 잔뜩 비음을 써서 "마으"라고 발음을 하는 것입니다.
발음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아예 듣는 것을 그렇게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이 모든 다름이 서로 담장을 쌓고 오랫동안 왕래를 하지 않아 생긴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학자들은 오랜 단절의 결과라고 말하겠지요.
하지만 제가 직접 경험해 본 바로는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어쩌면 바벨탑을 쌓는데 언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건설현장에 가 보면 사실 대화보다는 손짓과 몸짓으로 의사를 소통합니다.
먼데 있는 사람에게 망치를 가져다 달라고 하면 소리쳐 부르는 것보다 손으로 못을 박는 시늉을 하는 것이 훨씬 빠릅니다. 직접 노가다를 해 본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이것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께서 혼잡케 하신 것은 언어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어제 작업하던 사람들과 생각이 달라졌고 몸짓이 달라졌고 먹는 것이 달라진 것이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맛대고 의견을 모으는 연구작업이 아니라 단순 노가다인 바벨탑 조차도 같이 쌓을 수 없도록 어제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까불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교만하다가는 어제와 다른 아내, 어제와 다른 직장 동료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야말로 국물도 없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