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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신앙에세이

[신앙에세이] 예배는 드려서 뭣하나?

어제 주일에는 봄인데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비가 왔다.
비가 귀한 나라도 아니고 한국 땅에 살면 이 정도의 비와 눈은 양호한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제 교회 마당을 보고 있자니 우리의 양심과 신앙이 외부 사람에게 들킨 것 같아 몹시도 부끄럽고 누구에랄 것도 없이 화가 났다. 우리의 신앙과 양심이 겨우 이 정도라니 그냥 허탈하고 슬프고 부끄러울 뿐이다.

2부 예배를 마치고 여느 주일처럼 성도들을 모셔다 주고 교회 주차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교회 주차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그곳은 사랑과 배려, 섬김이 있는 교회 주차장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귀신 아수라[각주:1]가 휘젓고 지나간 듯한 대단히 혼란스럽고 추접한 장소 그대로였다.



교회차가 주차해야 할 공간에는 어느 한 곳도 없이 모두 성도들이 타고 온 승용차로 가득 차 있었고 통로에는 질서도 없이 아무렇게나 주차한 차가 뒤엉켜 어디 들어갈 틈이 없었다. 뒤늦게 꾸역 꾸역 도착하는 교회 대형버스들은 들어갈 자리를 찾지 못해 대로변에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어디에 지진이 났는가? 전쟁이 났는가 말이다.
천재지변이 난 것도 아닌데 교회차를 주차해야 할 곳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 곳에 주차를 하고 버젓이 예배를 드리러 간 사람은 뭐란 말인가. 그래 예배는 드려서 뭣하나 말이다.

정신좀 차리자.
한번쯤 예배 드리지 않는다고 당장 하늘에서 벼락 내려 오지 않는다.
비온 날 예배 한번 드리지 않았다고 온 가족을 몰살시킬 하나님이 아니단 말이다.
우리는 뭔가 착각을 하고 있다.

나의 예배를 위해 주위에 피해를 주고 가족을 희생시키는 것을 우리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심지어는 믿음 좋다고 칭찬을 한다. 웃기지 마라. 그것은 착각이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와 섬김을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 기독교인을 보고 '개독교'라고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인정을 한다.
그것은 자업자득의 결과이다.
우리들의 잘못된 행태로 '기독교'가 '개독교'가 된 것이다.

생각해 보라.
내 꼬라지 어느 구석에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존재한다는 말인가
우리들 꼬라지를 보고 어떻게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은 우리들의 일요일 아침의 찜찜함을 해소하기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이 개나 소가 아닌 우리 인간들에게 코에 생기를 불어 넣고 세상을 다스리고 정복하라는 명령을 주신 것은 우리가 개나 소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우리는 특별하게 지음을 받았고 개나 소가 갖고 있지 않는 생기를 받았다(창2:7)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과 다름없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엄청난 모독이다.
  1. 인도 고대신화에 나오는 악신. 얼굴이 셋이고 팔이 여섯인 흉칙하고 거대한 모습을 하고 있다.[출처] 아수라장 [阿修羅場 ] | 네이버 백과사전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