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강점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 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강점을 사용하시기를 좋아하신다. 왜냐하면 강점은 하나님께로 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를 달리 달란트, 또는 은사라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강점이 무엇인지 속히 파악해야 한다.
그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우리는 남은 생애를 헛되이 보내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께 쓰임받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자기의 강점이 무엇인지 모르겠는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강점이다.
자기가 관심가는 것이 강점이다.
자기가 남들보다 하나라도 잘 하는 것이 강점이다.
나도 어릴 적 나의 이력을 작성할 때 취미란은 흔쾌히 적었으나 특기란을 쉽게 채울 수 없었던 적이 있었다.
'내가 남들보다 특별히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
고민이었다.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특'자에 온통 신경이 가니 답을 적을 수 없었고 그 이후 나는 무색무취한 인간이 되어 버렸다.
지금 다시 적으라면 몇장이라도 적을 수 있으련만 그 당시는 나를 주눅들게 하는 물음이 되었었다.
아무 재주도 없는 사람을 일컬어 우리는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라는 말로 우리는 상대방을 놀려대곤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말이다.
인간이 굼벵이의 삶을 다 알 수 없겠지만 인간의 눈에 보기에도 굼벵이는 구르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굼벵이는 구르는 재주가 강점이다. 인간으로 치면 달란트요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은사이다.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사람은 없다.
만약 있다면 이는 우리가(또는 내가) 그를(또는 나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 말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위험한 말이다.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는 전제를 믿는다면 이는 입밖에도 내지 말아야 할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오해를 많이 한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여 요구사항이 참 많다.
무엇도 있었으면 좋겠고 생각해 보니 또 무엇도 필요하다.
가관이다.
다윗왕이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들을 때 비유로 든 예화처럼 부자가 가난한 자의 것을 빼앗아 사용하는 것처럼 도에 지나치다.
우리는 먼저 내가 가진 많은 것들을 감사해야 한다.
다른 특별한 것을 요구하기 전에-그렇다 우리는 항상 맡겨놓은 것처럼 요구를 한다- 내가 가진 강점을 발견하고 그것이 하나님 손에 들려 쓰여지기를 바라야 한다.
골짜기에 뒹굴던 나귀 턱뼈가 삼손의 손에 들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룬 것처럼 말이다.
삼손에 의해 사용되어진 나귀 턱뼈
사울을 변화시켜 바울로 쓰신 하나님이지 사울을 변화시켜 베드로같이 쓰신 분이 아니시다.
마찬가지다.
우리를 변화시켜 우리의 강점으로 쓰시는 것이지 우리를 변화시켜 바울같이 또는 베드로같이 쓰실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의 역사에 바울은 한명으로 족하다.
하나님의 역사에 베드로는 한명으로 족하다.
이제는 내가 쓰임받아야 한다.
내가 변하여 바울이 될 필요도 없으며 베드로가 될 필요도 없다.
물론 모세가 될 필요도 없다.
이제는 변화된 나로써 쓰임을 받아야 한다.
이 세상에 오직 유일한 존재.
하나님 나라에 내가 하지 않으면 안될 유일한 사명.
어떤가 가슴이 뛰지 않는가
나는 오늘도 나의 사명을 위해 달려갈 길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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