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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좋은 생각

교회의 인사 난맥상 대안없나?


연말이 되니 각종 기관에서는 지난 1년간의 공과와 새로운 1년을 대비하는 모습으로 분주합니다.
그러나 올해는 새로운 1년에 대한 설레임보다는 자리 이동을 하는 문제로 교회가 예전에 없이 시끄러운 소리가 들립니다.
저와 같이 인사권의 대상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사람들에게는 사소한 문제이겠지만 당사자들은 많이 억울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좀더 냉정하게 우리가 예전에 받은 은혜들을 되새기며 현재의 심정이 죄로 발전되지 않도록 각자가 죄를 다스리는 성숙한 자세가 요구됩니다.(창4:7)

우리가 우리의 노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섭섭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섭섭함과 그에 대한 분냄은 첫사람 아담으로 인한 죄의 결과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후 에덴 동산에 두시며 (순조로이) 땅을 경작하시게 하셨습니다.(창2:15)

그러나 첫사람 아담이 죄를 범한 후 이 땅은 저주를 받아 우리 사람들은 수고를 하여야만 소산을 먹을 수 있는 척박한 환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유없이 또는 이유있이 수시로 분냄과 노함, 슬픔의 감정이 솟구칩니다.
지금 우리들이 겪고 있는 경쟁의 심리도 아마 그때 생겨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교회는 우리의 노력에 대한 경제적 댓가를 지불해 주는 곳이 아닙니다.
도리어 자기 돈을 내고 다니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반 회사와 똑같은 경쟁과 다툼과 질시가 있습니다.
심지어 수시로 우리는 교회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다투고, 남을 미워하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다.

이와 같은 일을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방법만 있다면 교회 생활을 좀더 즐겁고 행복하게 할 수 있도록 연구하고 노력을 하여야 합니다.

교회의 인사권은 당회에 있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결론을 도출할 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잘못된 인사로 인한 죄의 상태에 이르도록 서로 상대방을 방치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크게 아래와 같은 두 부류에 우리는 직, 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현실파입니다.
교회의 인사권을 행함에 사회와 같은 잣대로 실력 위주의 사람을 기용합니다.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은 교회에서도 고속 승진(?)을 합니다.
금방 집사가 되고 금방 교회의 기관에 책임자가 됩니다.

처음에는 그의 출중한 실력과 친화력으로 그 기관은 눈에 띄게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부흥(?)이 됩니다.
인사권을 행한 당회나 교회에서는 대만족을 합니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보면 그 기관은 속빈 강정이 되고 맙니다.
사람은 늘었지만 영적인 분위기는 점점 메말라가고 몇몇 신실하던 구성원들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이리 저리 서먹해 하다가 서서히 발길을 돌립니다.

둘째는 무조건 믿음파입니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각자의 은사가 있습니다.
그 은사대로 살아야 하나님 목적대로 사는 것이고 제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연륜이 쌓이고 믿음 좋다고 막무가내로 한 기관의 책임자를 맡겨 버립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 리더쉽을 근본적으로 주셨습니다.
하지만 소규모인 가정과 3-40명이 모이는 교회의 기관은 지도력을 발휘하는 방법이 다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아는 본인이 부담감으로 책임자 자리를 극구 사양해도 기어코 맡겨 버립니다.
당회에서야 자세한 사정을 모르니 추천에 의해 임명하지만 임명을 받은 기관의 하부 사람들이 무리의 힘을 이용하여 무조건 강제적으로 맡겨 버립니다. 과도하고 부담스런 믿음입니다.
그들이 늘상 인용하는 성구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삼상15:22)는 사무엘의 고백입니다.
어떻게 순종이 하나님의 뜻(=은사)보다 우선하고 낫다는 것인지......


최선의 방책은 위의 두 사안을 묶는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는 믿음도 있어야 하고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첫째는 믿음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 위에 개인의 능력, 실력을 쌓아야 합니다.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정말 위험천만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변하여 바울을 되게 하신 것이지 사울을 변하여 베드로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바울이고 베드로는 베드로입니다.
사울이 베드로가 될 수는 없습니다. 아니 되어서도 안됩니다.

물론 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짧음이 아닙니다.
물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주님이 사울을 베드로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쓰지 않으십니다.
만약에 그렇게 쓰신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스스로 허물어버리시는 것입니다.

너무 인본주의적인 생각이 아닌가 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나머지 얘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최근에 글이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너무 송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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