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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신앙일기

[신앙일기] 내가 처음 주를 만났을 때


저는 모태신앙입니다.
즉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교회를 출석하였습니다.

학교 생활도 그랬지만 저는 교회 생활도 비교적 모범적인 생활을 하였습니다.
크게 선생님의 뜻을 거스리지 않고 얌전히 선생님의 지시에 순응하며 공부에만 전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국민학교에서 고등학교때까지 줄곧 개근상을 타기도 했으며 성적도 줄곧 상위권에 랭크될 정도로 촉망받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주일학교에서도 곧잘 상을 타서 그 상품으로 국민학교때는 학용품을 따로 구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학용품은 풍족하게 사용하였습니다.

군을 제대한 후 대학 근처에 자취집을 구하고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교회를 정하였습니다. 아니 교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취집을 구했습니다.

저는 평소에 교회는 무조건 가까워야 한다는 남다른 소신이 있었기에 대학교때까지 이사를 가게 되면 무조건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교회를 옮겼습니다.

새로 정한 교회는 인원도 적고 분위기도 매우 썰렁한 교회였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매우 은혜로왔지만 제 나이 또래의 청년이 몇명 없어서 청년회가 따로 구성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교회를 개척하고 한때 부흥의 길을 걷고 있었지만 교회가 목사님파, 장로님파로 양분되어 목사님을 지지하는 대부분의 청년들이 목사님을 따라 썰물처럼 빠져나간 교회였습니다.

연말이 되어 전임 목사님을 따라 갈 수 없었던 교회 중직자 자녀들 몇명과 저를 포함한 신입회원 1-2명이 가세한 7명이 청년대학부 창립 총회를 가졌습니다.
군에서 제대한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나는 아직까지 남아 있는 군인 정신과 남다른 성실성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저에게 소중한 한표를 던졌습니다. 결과는 용감하고 패기 넘치는 저의 승리였습니다. 제가 청년대학부 초대 회장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때까지 교회에서 임원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니 교회 봉사라고는 처음이었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보낸 시골 고향 교회에서는 어리다는 이유로 또 제가 부끄러움을 많이 타므로 남 앞에 서는 것을 대단히 꺼려서 국민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의 임명으로 된 학급 부반장을 몇번 해본 것이 남을 리더하던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대학교 1-2학년 때는 시골에서 올라온 촌뜨기며 나서기를 싫어하고 남의 눈에 뜨일만하면 이사를 갔던 저였으니 임원은 고사하고 그 흔한 부서의 장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비록 얼마되지 않는 숫자이지만 청년대학부의 방향을 결정하고 다른 회원들을 이끌고 가야 할 중요한 위치에 어느날 갑자기 서 있게 된 것입니다.
그 막막함과 그 두려움이란.....

이때까지 눈으로 본 것이 없으니 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선배라도 있으면 물어보기라도 하련만 내가 초대 회장이니 물어볼 사람이 없었습니다.
교회에는 30-40대 층은 없었고 장로님이 포함된 장년층과 여자 집사님들이 몇분 계셨습니다.
유일하게 물어볼 사람이라고는 목사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때까지 먼 발치에서 바라보던 목사님들은 웬지 범접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목사님께 어렵게 입을 떼 물어보면 목사님은 항상 가타부타 명확하게 일러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되겠나 아무튼 열심히 해 보이소"
이것도 나중에 안 일이지만 위의 대답은 하지 말라는 부정의 완곡한 표현이었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이던지 열심히 하는 것과 기도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도와 남다른 열심을 하였더니 처음 맡은 주일학교 교사에서는 우리 반은 매주 모범반이 되었고 아이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저는 다른 날과 동일하게 주일예배를 드리는데 목사님의 설교 어느 한 부분에서 왈칵하고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냥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정도가 아니라 소리만 내지 않았다 뿐이지 통곡을 하게 되었습니다. 눈물, 콧물을 다 쏟으며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입을 틀어 막으니 저는 헉헉 흐느끼며 어깨를 들썩였습니다. 주위에서 조용히 예배를 드리던 분들이 흘낏흘낏 저를 주목하기 시작했으나 저는 쏟아지는 눈물, 콧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 현상은 한달내내 지속되었습니다.
새벽예배때도 수요예배때도 저는 알수 없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덩치는 커다란 26세 청년이 후배들도 보고 부모를 따라 온 주일학교 아이들도 보는데 저는 어깨를 들썩이며 헉헉 흐느껴 울었습니다. 예배를 마치면 교회 문 앞에 도열한 장로님과 다른 성도님들을 보는 것이 부끄러워 축도 시간에 조용히 빠져나와 재빨리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나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일찌기 모태에서부터 교회 생활을 하였지만 저의 신앙생활은 27세, 대학교 3학년때 처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과의 첫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 첫사랑 위에 나의 교회 생활과 봉사와 기도가 쌓여 갔습니다.
이제는 제법 예수 믿는 티가 나고 어디에 가던지 하나님을 먼저 찾습니다.
그때 부어주신 축복으로 이 블로그에서는 알알이 믿음의 고백들이 영글어 갑니다.

  * 이 포스트는 blogkorea [블코채널 :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에 링크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