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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신앙에세이

[신앙에세이] 쉬운 복음, 정직한 복음

나는 쉬운 복음, 정직한 복음을 추구한다. 내가 매일 아침 성경을 읽어 보니 복음이 꼭 그렇게 고차원의 학식과 인품을 가진 사람의 전유물은 아닌 것 같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쉽고도 정직한 복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내가 추구하는 쉬운 복음, 정직한 복음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쉬운 복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 자체가 매우 단순하고 쉽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 것이고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간단명료한 사실을 믿는데는 학식도 필요없고 연령도 필요없다.
그냥 단순한 이 한가지 진리만 받아 들이면 그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단순하고 쉬운 진리를 비비 꽈서 어렵게 설명하는 사람들이 우리 가운데 너무나 많은 것 같다.
특히 소위 배웠다는 사람들이 더 그렇다. 복음을 설명하는데 쉬운 언어로 해도 충분한데 굳이 어려운 신학적 용어를 쓰고 단순한 내용을 빙빙 둘러서 모호하게 하는 표현을 한다.

어린이를 상대로 하는 설교에서도 이런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어 그들의 언어로 설교를 해야 하는데 굳이 어려운 어른들 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성령충만"이라는 용어는 우리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단어라 아이들이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한다. 안 그래도 집중력이 오래 가지 못하는 어린아이들인데 이런 용어가 난무하면 아이들은 금방 싫증을 내고 딴 짓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재미없는 설교와 함께 오대양 육대주를 순회하는 길고도 긴 기도는 정말 아이들을 질리게 만든다. 듣고 있으면 어른인 나도 죽을 맛(?)이다. 교회에서 죽어가는 영혼을 살려야 하는데 죽여서야 되겠는가 말이다. 나는 이런 설교는 복음의 싹을 자르는 파렴치한 행위라고 본다.

어른들의 설교도 마찬가지다.
보다 쉬운 표현이 있는데 꼭 그렇게 어려운 표현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가? 듣고 있으면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복잡하고 사지가 뒤틀릴 정도의 따분한 설교가 너무 많다.

이런 사람들이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가면 나는 분명히 책망을 들을 것이라 확신한다.
하나님의 꾸지람은 이런 것이 아닐까
"이 멍충아 내가 복음을 쉽게 만들어 놨는데 니는 어디서 받은 뚱딴지같은 은사로 복음에 초를 치니"

천국에는 성경에는 없지만 '쉬운 복음 어렵게 만든 죄'가 있지 않을까




2. 정직한 복음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있으면 어릴 때 읽은 무협지나 SF영화를 보는 것같은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하늘을 날아 다니고 죽었던 사람이 깨어나며 불치의 병에 걸렸던 사람이 고침을 받았다고 선전을 한다.

정말 그런가 정말 예수만 믿으면 불치의 병이 낫고 망해가던 사업이 벌떡 벌떡 일어서는가 그렇다면 일평생 육체적 가시를 몸에 지니고 살았던 사도 바울은 뭐가 되고 죄없이 채칙맞고 침밷음을 당한 예수님은 뭐가 되는가. 정말 예수만 믿으면 모든 병이 낫는다고 한다면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가 100년이 넘었으니 지금 병원의 반 이상은 벌써 문을 닫았어야 했다.

사실 병이 낫고 앞일을 쪽집게 같이 알아 맞히는 종교는 무당이나 동네 철학관이 더 빠르다. 어릴 때 보니 동네에서 아픈 사람이 있으면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를 하니 아픈 병도 곧잘 낫더라. 그리고 철학관은 어떤가 복채만 두둑하면 30분안에 그 사람의 과거일과 앞일을 귀신같이 알아 맞힌다. 30분이 무엇인가 10분이면 족하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런 효과 빠른 기적이 얼마나 있는가 

병 낫기만을 강조하는 복음은 싸구려 복음이다.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교회나 이런 기적이 우월한 것인양 부러워들 하고 있으니 나는 정말 난감하고 황당하다.

진정한 신앙의 길은 탄탄한 아스팔트 대로가 아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서도 성도의 순전함을 지키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핍박을 받고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의 나아갈 길이다.

나는 수도 없이 고통으로 울부짖을 때 하나님은 그냥 침묵하고 계셨다. 도무지 그의 존재를 나타내지 않으셨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 고통 속에서 함께 아파 하셨음을 발견하고 감격했다. 이것이 하나님이다. 폭풍같은 기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도 하지만 우리와 함께 같이 아파하는 분이시다. 그 분의 능력이 짧아서가 아니다. 그 당시 기적이 없음이 그에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교 4학년때 취업으로 한창 고민하고 있을 때 주일에 치루는 국가고시를 포기했더니 나중에 하나님께서 대기업에 무시험 합격시켜 주셨다는 설교 예화를 듣고 나는 그 당시 얼마나 좌절했는지 모른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취업대기생이 즐비한 가운데 사용한 예화치고는 너무 치졸했다.

설교자들이여 성도들의 착한 마음에 헛바람을 불러 일으키지 말라. 제발 뻥좀 그만 치시라. 그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그의 영혼이 맑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가 아직 진흙탕에 앉아 있는 것은 그의 믿음이 약해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대의 기도가 필요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제발 진흙탕에서 빨리 나오라고 다그치지 말고 그와 함께 자리를 잡고 앉아 보라. 머지 않아 같이 헐떡이고 있는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