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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피아니스트 유예은양



최근 SBS 오락 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 킹’ 에 출연해 뛰어난 피아노 연주 실력을 보여준 유예은양(5).

어떤 멜로디든 한 번 들으면 그대로 연주해 화제를 모은 예은이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선천성 시각장애인이다. 놀라운 건 이 장애 때문에 갓난 아기 때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예은이가 전신지체 1급 장애인 유장주씨(40)와 비장애인 박정순씨(37) 부부에게 입양돼 자라고 있다는 것. 남편에게 장애가 있음에도 기꺼이 또 다른 장애가 있는 아이를 입양한 이 가족의 남다른 사랑 얘기가 궁금해 경기도 포천에 있는 예은이네 집을 찾은 순간, 기자는 또 한 번 놀랐다.
그의 집에는 이들 세 식구뿐 아니라 또 다른 8명의 장애인이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

예은이네 집은 이들 외에도 날마다 출퇴근하는 7명의 다른 장애인까지 오가는 ‘그룹 홈(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장애인이 공동으로 생활하는 가정)’이다. 이들은 마당에 마련된 작업실에서 함께 작업을 해 번 돈으로 생계를 꾸리는 ‘큰 식구’. 이 가정은 예은이 아빠 엄마가 결혼할 때부터 계획해 이룬 것이라고 한다.

“저는 비장애인으로 살다가 스무 살이던 87년 큰 교통사고를 당해 목 아래로는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전신마비 장애인이 됐어요. 그때부터 장애인들이 인격적인 대우를 받고 가족처럼 서로를 도우며 살 수 있는 ‘그룹 홈’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러다가 같은 소망을 품고 있던 아내를 만나 꿈을 이룬 겁니다.”

유씨는 사고 후 한 교회 장애인 예배 모임에서 아내 박씨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당시 밀알복지재단 장애인 그룹 홈 간사로 일하고 있던 박씨는 늘 웃음을 잃지 않는 밝고 쾌활한 성격이라 유씨의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하지만 ‘저렇게 좋은 사람이 어떻게 내 짝이 될 수 있겠나’ 하는 마음에 지레 포기하고 있던 유씨에게 박씨는 기꺼이 마음을 열어줬다고 한다. 또 “결혼해 함께 장애인들의 진정한
생활 공동체를 만들어보면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청한 유씨의 청혼도 받아들였다고.

“남편이 좋았고, 또 장애인 그룹 홈을 만들어 생활하는 건 제 꿈이기도 했으니까요(웃음). 처음 이 사람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는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제가 ‘나는 이미 결정을 했으니 서로 상처 주는 말은 하지 말자’고 부탁했죠. 저희 식구들이 워낙 모질지 못해서 결국은 제 뜻을 따라줬어요. 그렇게 저를 믿고 이해해준 게 참 고맙죠.”

두 사람은 지난 2001년 1월 결혼한 뒤 포천에 그룹 홈을 꾸렸다.
한 명 한 명 장애인 가족이 늘어나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던 이들에게 딸 예은이가 생긴 건 자신들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한다.

지난 2003년 우연히 “선천성 시각장애아라 부모에게 버림받은 갓난아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른 입양 가정이 나타날 때까지 맡아주겠다고 약속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고.

“예은이는 앞을 보지 못할 뿐 아니라 미숙아였어요. 태어난 지 한 달이 지났을 때 처음 봤는데, 얼마나 작은지 마치 갓 태어난 아기 같아 보였죠. 가엾고 애틋한 마음이 절로 들었어요. 그 작고 여린 생명을 돌보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가 계속 키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하지만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에게 이런 마음을 털어놓지 못한 채 가슴앓이만 했다고 한다.
유씨는 “나 하나만으로도 아내에게 큰 짐인데 앞 못 보는 아이까지 맡자고 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에, 박씨는 “아이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장애인 그룹 홈을 만들자고 해놓고 이제 와서 입양을 하자고 말해도 될까” 하는 생각에 조심스러웠다고. 그러나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됐고 예은이를 입양하게 됐다고 한다.

“예은이가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자라 사람들의 닫힌 마음을 열게 해주면 좋겠어요”

“주위 사람들은 우리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그런 대단한 결심을 했냐’고 하는데, 저희에겐 예은이를 키우는 게 당연히 그렇게 돼야 할 일인 것처럼 자연스러웠어요. 아마 예은이는 처음부터 우리 딸이 될 아이였나봐요.”

박씨의 말처럼 예은이는 한 식구가 된 뒤 한 번도 부모의 속을 썩이지 않은 착한 딸이라고 한다. 울거나 칭얼거리는 일 없는 순한 성격에 잔병치레도 하지 않아 키우면서 힘든 줄 몰랐다고.

이들 부모가 예은이의 음악적 재능을 처음 발견한 건 아이가 두 살 무렵, 아는 사람으로부터 낡은 피아노를 선물받으면서부터였다고 한다. 보통 아이들은 피아노 건반에서 소리가 나면 잠시 신기해하고 아무 곳이나 뚱땅뚱땅 두드려보다 흥미를 잃는다는데, 예은이는 한쪽 끝 건반부터 반대편 끝까지 하나씩 눌러보며 가만히 소리를 듣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박씨는 예은이가 자신이 평소 흥얼거리던 노래 ‘사랑을 위하여’의 멜로디를 피아노로 연주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랐다고.

“그때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말로 다 표현 못하죠. 아무도 피아노를 가르쳐준 적 없는데 혼자 앉아 노래를 치고 있으니 말이에요. 신기한 마음에 인터넷 사이트에서 동요를 다운받아 들려줬더니 그것도 금세 외워서 혼자 연주하더라고요.”

예은이에게는 귀로 들은 멜로디를 건반으로 옮길 수 있는 절대 음감이 있었던 거였다. 예은이는 처음 듣는 노래라도 누가 옆에서 부르면 바로 음을 짚어내고, 컴퓨터로 클래식 연주곡을 듣고 나면 반복되는 주요 멜로디를 금방 외워 쳐낸다. 교회에서 늘 듣는 찬송가,
복음성가는 오른손으로 멜로디를 치면서 왼손으로 반주 코드까지 정확히 짚으며 연주한다고.

이런 예은이를 보고 놀란 이들 부부는 그때부터 인터넷에서 다양한 음악을 다운받아 예은이에게 들려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아빠 유씨의 컴퓨터에 있는 ‘예은이 피아노’ 폴더에는 동요, 찬송가, 복음성가부터 시작해서
베토벤, 바흐, 쇼팽, 모차르트 등 유명 클래식 음악이 작곡가별로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하지만 예은이가 그 노래들을 멋지게 피아노로 연주할 때마다 이들 부부는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고 말했다. 부족한 부모 탓에 아이가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엄마 아빠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겨우 컴퓨터로 음악을 들려주는 것뿐이라는 게 마음 아프죠. 학원에라도 보내고 싶어 여러 곳에 찾아다녔지만 앞 못 보는 아이를 학생으로 받아주겠다는 곳이 없었거든요.”

최근 TV에 예은이의 사연이 소개된 뒤 주위 사람들의 소개로 한 맹아학교에 오디션을 받으러 갔는데 “잠재력이 있어 제대로 된 교육만 받으면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겠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렇게 예은이를 가르칠 수 있다”는 얘기는 없어 마음이 아팠다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도, 지원도 크게 부족하다는 걸 새삼 깨달은 것이다. 지금 이들 부부가 간절히 바라는 건 예은이가 자신에게 맞는 교육을 받아 재능을 마음껏 펼칠 기회를 얻는 것이다.

“예은이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가 저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니’ 하며 많이 놀라워하고 감동을 받아요. 저희는 요즘 예은이가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자라 사람들의 닫힌 마음을 열어줄 수 있게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좋은 기회가 생겨서 언젠가 많은 사람들이 예은이의 연주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기획·송화선 기자 / 글·오진영‘자유기고가’ / 사진·박해윤 기자

출처 : Tong - hanein님의 더불어통